고대 무나카타 가문의 분묘군 ― 신바루ㆍ누야마 고분군 ―
현대까지 이어지는 오키노시마 신앙의 전통을 구축한 무나카타 가문의 존재를 입증해 주는 물증이 5~6세기에 만들어진 신바루ㆍ누야마 고분군입니다.
무나카타 지역은 옛날에는 크게 내해가 펼쳐진 해안부와 오키노시마 섬 사이에 위치하는 오시마 섬 등으로 바다와 일체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신바루ㆍ누야마 고분군은 옛날의 내해에 면해 있으며 본토에서 오키노시마 섬으로 이어지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대지 위에 전방후원분과 원분, 방분 등 크고 작은 다양한 양식의 고분들로 밀집해 만들어져 있습니다.
대외교류의 무대가 된 바다에서 활약하며 오키노시마에 대한 신앙을 도맡아 키운 무나카타 지역의 고대 호족의 본연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배의 전통과 금기
오키노시마 섬은 성스러운 섬을 지키기 위한 엄중한 금기 등 신앙에서 비롯된 전통으로 인해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대부분 고스란히 지켜져왔습니다.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오키노시마 신앙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살아 있는 것입니다.
18세기가 될 때까지 오시마 섬 북쪽 해안에 만들어진 오키쓰미야 신사 요배소는 평소에는 들어갈 수 없는 오키노시마 섬을 멀리서나마 배례하기 위한 신앙의 자리입니다. 이 신전은 섬 자체를 신으로 여기는 오키노시마 섬에 대한 배례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고대제사를 지내지 않게 된 후는 활발한 대외교역으로 번성한 무나카타 다이구지 가문이 신앙을 지켜왔으며 다이구지 가문이 단절된 16세기말 이후에도 신관과 지역 사람들이 그 신앙을 지탱해 왔습니다.
오키노시마 섬 주변에서는 무나카타 지역 사람들의 어업활동이 시작되어 17세기부터는 경계 해역을 경계하기 위한 보초가 섬에 주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도 오키노시마를 '신이 깃든 섬'이라 하여 함부로 섬에 들어가거나 물건 반출 금지 등 엄격한 금기를 지켰습니다. 이러한 금기는 현재까지도 계승되고 있습니다.
오키노시마의 금기
- '오이와즈사마'
- 오키노시마 섬에서 보고 들은 것은 일체 발설해서는 안된다고 하여 사람들은 오키노시마를 '오이와즈사마(不言樣)'라고 부르는 등 경외하는 마음으로 현대까지 지켜 전해왔습니다.
-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 한 개라도 가지고 나와서는 안된다'
- 오키노시마에서는 일체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면 안된다고 하였으나 에도시대에는 이를 어겨서 지벌을 입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키노시마의 고대 제사유적은 거의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고스란히 지켜진 것입니다.
- '상륙 전의 미소기'
- 오키노시마 섬은 무나카타타이샤 신사의 사유지로 평소 상륙은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매일 의식을 거행하는 신관이라도 먼저 반드시 옷을 모두 벗고 바다에 몸을 담가 심신의 부정을 씻어내지 않으면 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