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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노시마와고대 제사

  일본열도와 한반도 사이에 위치한 오키노시마 섬은 고도의 항해기술을 가진 무나카타 지역 사람들의 길잡이었습니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해상 대외교류가 빈번히 이루어진 4세기후반~9세기말, 약 500년간에 걸쳐 오키노시마 섬에서는 항해 안전과 교류 성취를 기원하여 엄청난 양의 귀중한 봉헌품을 사용한 제사가 지내졌습니다.

 섬 전체가 신앙의 대상인 오키노시마 섬에는 '신이 깃든 섬'으로 엄격히 섬 출입을 제한하는 금기와 같은 관습이 사람들 사이에 뿌리내려 자연 숭배에 근거한 고대 제사의 변천을 보여주는 유적들이 거의 사람들 손길이 닿지 않은 채 고스란히 현대까지 계승되어 왔습니다.

  제사 의식은 거대한 바위 위에서 시작하여 바위 그늘로, 그리고 점차 노천의 평탄한 곳으로 옮겨지면서 그 사이에 무나카타 세 여신에 대한 신앙이 형성되어갑니다. 또한 바다를 건너온 외래 진품들을 비롯하여 신에게 봉헌된 제물들은 고대의 제사 변천과 각 시기의 대외 교류의 모습을 증명해 주는 것으로서 발견된 8만 점 모두가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바위위 제사유적

 4세기후반 활발해진 대외 교류를 배경으로 거암 위에서 제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바위와 바위가 겹쳐진 좁은 공간에 봉헌품이 정중하게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제사에 사용된 것은 청동거울이나 철검 같은 무기, 구옥 같은 구슬류가 중심으로 당시의 고분 부장품과 공통됩니다. 또한 거을·검·옥은 일본신화에서 '삼종의 신기'라고 불리며 후세까지 오랫동안 제사에서 사용된 것들입니다.

17호 유적

 5세기 중엽 쯤에는 거암 위에 돌을 네모나게 둘러놓은 제단(祭壇)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거기에 야마토왕권이 한반도에서 조달해온 철 소재를 바친 것을 볼 때 당시 일본이 철 소재를 얼마나 필요로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삼각연신수경

바위그늘 제사유적

 5세기 후반이 되면 제사의 장소는 처마 차양처럼 돌출한 거암 그늘로 옮겨집니다. 이 바위그늘 제사의 봉헌품에는 철제 무기나 작은 칼・도끼 등의 축소 모형품, 한반도에서 들어온 금동제 말갖춤 등이 있습니다. 금제 반지는 신라 왕릉에서 출토된 반지와 흡사하며, 또한 이란제 컷 글라스 파편은 저 멀리 실크로드를 거쳐 전래되었다고 생각되어, 중요한 교류의 증거입니다. 위험한 바다를 건너 대외교류를 펼친 고대 사람들은 이 귀중한 물건들을 신에게 바치고 기도한 것입니다.

금제 반지
거암 오른 쪽이 7호 유적, 왼쪽이 8호 유적.

반 바위그늘・반 노천 제사유적

  바위그늘 제사의 마지막 시기(22호 유적)부터 반 바위그늘・반 노천 제사(5호 유적)에 걸쳐 봉헌품에 명확한 변화가 보이게 됩니다. 종래처럼 고분의 부장품과 공통되지 않은 금동제 방직구와 인형, 거문고, 제사용 토기 등 제사를 위해 만들어진 봉헌품이 두드러지게 됩니다.

22호 유적(바위위 제사유적)
22호 유적(바위위 제사유적)
5호 유적
(조사 당시 출토 상태에 근거하여
토기를 다시 배치한 모습)

 이 시기 동아시아에서는 중국대륙을 수나라가 통일한 후 이어서 당나라가 장악하게 됩니다. 야마토왕권은 양 왕조로 사신을 보내 교류에 힘썼으나 오랜 우호관계에 있었던 백제가 당과 신라에 의해 멸망하자 야마토왕권은 663년에 나당연합군과 싸워 대패. 존망의 위기에 닥친 야마토왕권은 그 후 당나라을 본보기로 한 중앙집권국가 확립에 전력을 기울여 갑니다.

금동제 용두
당삼채장경병편
오현금 모형

  오키노시마 섬의 제사는 그러한 격동의 동아시아 정세와 국가 개혁 속에서 변화를 이룬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새로운 제사는 그 후 현재까지 계속되는 일본 고유 신앙의 제사 기반이 되었습니다. 방직구와 거문고 등은 현대에도 이용되는 이세신궁의 신보(神寶)와 공통됩니다.
 문자 기록이 남아 있는 8세기 이전의 일본의 고대 제사 모습을 전해주는 오키노시마 제사유적은 일본 고유 신앙의 형성 과정을 생각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노천 제사유적

사람 모양
배 모양
말 모양
나라삼채소호

 8세기가 되면 거암군에서 약간 떨어진 노천의 평탄한 곳으로 제사를 지내는 장소가 옮겨집니다. 큰 돌을 중심으로 한 제단(祭壇)과 같은 유구 주변에는 대량의 봉헌품이 남아 있었습니다. 노천 제사에서 출토된 봉헌품은 구멍이 뚫린 제사용 토기를 포함한 각종 다양한 하지키・스에키 토기와 사람 모양・말 모양・배 모양 등 활석제 모형 등이 중심이 됩니다.
 이들 봉헌품은 새로운 시대의 제사의 특색을 지니고 있는 한편, 무나카타 지역의 독특한 모양과 재질로 제작되었습니다. 고대국가의 새로운 체제하에서 지역 전통을 남기고자 한 제사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1호 유적